윤은 중국을 좋게 안 보는 입장이고, 한동훈은 부모가 중국을 기지로 사업을 해서 돈을 벌었으니 재산상 이익이 중국과 이어질 거고 그에 반하는 윤전대통령의 반중 정책과 부정선거 요인은 자신에게 매우 안 좋은 상황을 만들 거다. 뭐 이런 바탕이 있다고 본다.
윤이 중국 테무 등 한국 잠식에 대한 발언을 했을 때, 바로 한동훈은 반발했지.
위에 같은 추론으로 반윤, 윤탄핵 등에 앞장선 것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 다른 요인들은 차치하더라도!!
국가와 개인 간의 갈등 이런 대결인 거지. 이에 대한 가치 판단은 각자 다르겠지만,
어쨌거나 부정선거를 미신 취급하고 윤 제거, 청산을 외쳤던 면에서 반국가적, 반사회적이라고 붙일 수 있을 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분명히 명확히 문제가 많은 인물임에는 틀림 없다.
국가로서 옳은 것을 위해 행동한 사람과 자신의 욕심에 얽매여 프레임을 씌워 윤내외를 궁지로 모는데 국가와 당 그리고 사회에 악 영향을 끼친 당사자는 바로 한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고 본다.
개인의 이익 관계로 반역한 자로 불려 마땅하다 생각한다.
서문
본 보고서는 2025년 6월까지 알려진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 측과 친윤(親尹)계 간의 갈등 양상을 심층적으로 분석하고자 한다. 한때 '윤석열 사단의 핵심'으로 불렸던 한동훈이 어떻게 친윤계와 대립각을 세우게 되었는지, 그 과정에서 어떤 주요 사건들이 발생했으며, 갈등의 근본 원인은 무엇인지 살펴볼 것이다. 특히 윤석열 전 대통령의 파면이라는 초유의 사태 전후로 갈등이 어떻게 변화하고 전개되었는지에 주목한다.
I. 한동훈 대 친윤: 갈등의 서막
1.1. 한동훈과 윤석열의 과거: 검찰 시절의 공생 관계
한동훈 전 대표와 윤석열 전 대통령의 관계는 검찰 시절 깊은 신뢰를 바탕으로 한 공생 관계에 가까웠다. 한동훈은 윤석열 사단의 핵심 인물로 평가받았으며,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초대 법무부장관을 역임하며 '친윤의 2인자'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이러한 긴밀했던 관계는 과거 '채널A 사건' 당시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이 한동훈에 대한 대검 감찰을 막아섰다는 의혹에서도 드러난다. 당시 윤석열 총장은 한동훈 검사에 대한 감찰 개시 보고에 격분하며 수차례 감찰 중단을 지시했고, 이는 규정 위반 소지가 다분한 행위였음에도 불구하고 한동훈은 감찰을 피할 수 있었다.
이처럼 과거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직권남용의 위험까지 감수하며 한동훈을 보호했던 사실은, 한동훈이 윤석열의 최측근이자 정치적 운명 공동체였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이후 한동훈이 윤석열과 첨예하게 대립하며 '친윤 떨거지'와 같은 격한 표현까지 사용하며 사실상 결별을 선언하는 듯한 모습으로 전환된 것은 , 단순한 정치적 노선 차이를 넘어선 깊은 감정적 골과 권력 투쟁의 격렬함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이처럼 극적인 관계 변화는 정치에서 영원한 동지도, 영원한 적도 없다는 격언을 상기시키며, 권력의 속성상 가장 가까웠던 관계가 가장 첨예한 대립 관계로 변모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1.2. '친한계'와 '친윤계'의 태동
'친한계(친한동훈계)'는 2024년 한동훈이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정치 전면에 나선 이후, 그의 리더십 아래 모인 인물군을 지칭한다. 이들은 한동훈의 정치적 부상과 함께 세력을 형성하기 시작했으며, 주요 인물로는 언론 및 정치권에서 진종오, 신지호, 조경태, 김종혁, 박정훈, 배현진 의원 등이 자주 거론된다. 이들은 한동훈의 정치적 메시지를 확산하고, 당내외에서 그의 입지를 강화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반면, '친윤계(친윤석열계)'는 윤석열 대통령의 당선 이후 그를 중심으로 결집한 정치 세력을 의미한다. 이들은 대통령의 국정 운영을 뒷받침하고 당내에서 대통령의 의중을 관철하는 역할을 주로 담당했다. 친윤계의 핵심 인물로는 이철규, 권성동, 장제원 의원 등이 꼽히며 , 이들은 '민들레(민심 들어볼래)'와 같은 연구 모임을 통해 세력화를 시도하기도 했다. 이처럼 양 계파는 각자의 구심점을 중심으로 형성되었으며, 당내 권력 지형 변화에 따라 그 관계 또한 유동적으로 변화해왔다.
II. 주요 갈등 국면과 사건 분석 (2024년 ~ 2025년 6월)
2.1. 갈등의 씨앗: 윤석열 대통령 재임 중 미세 균열
윤석열 대통령 재임 기간 동안 한동훈 당시 국민의힘 대표와의 관계는 표면적으로는 긴밀한 당정 협력 관계를 유지하는 듯 보였으나, 몇몇 민감한 현안을 둘러싸고 미세한 균열의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2.1.1.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의혹과 '마리 앙투아네트' 발언 (2024년 초)
2024년 초, 김건희 여사의 명품 가방 수수 의혹은 윤석열 정부의 주요 리스크 중 하나로 부상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당시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이던 김경율 회계사가 김 여사의 처신을 프랑스 혁명 당시 마리 앙투아네트에 빗대어 공개적으로 비판한 사건은 파장을 일으켰다. 이 발언은 대통령실의 심기를 정면으로 건드린 것으로 해석되었으며, 한동훈 당시 비상대책위원장이 이 상황을 원만하게 수습하지 못했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윤석열 대통령과의 관계에 첫 번째 주요한 긴장 요인으로 작용했다.
김건희 여사 관련 리스크는 윤석열 정부의 가장 민감한 부분 중 하나였기에, 한동훈 비대위 체제에서 나온 김경율 비대위원의 직격 발언은 대통령실과의 직접적인 갈등을 유발할 수밖에 없었다. 한동훈 대표가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느냐는 윤 대통령과의 신뢰 관계를 가늠하는 중요한 시험대로 여겨졌으나, 결과적으로는 양측 간의 앙금을 남기며 향후 갈등의 불씨가 되었다. 이는 한동훈 대표가 대통령의 의중과 다른 독자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신호로 해석될 여지를 남겼으며, 대통령 가족 관련 리스크가 당정 관계 및 당내 권력 구도에 얼마나 민감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였다.
2.1.2. 의대 정원 증원 문제 관련 이견 노출 (2024년 8월)
의대 정원 증원 문제는 윤석열 정부의 핵심 개혁 과제 중 하나였으나, 이를 둘러싼 당정 간의 이견은 양측의 갈등을 더욱 표면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2024년 8월, 한동훈 당시 국민의힘 대표는 장기화되는 의정 갈등 해소를 위해 2026학년도 의대 정원 증원을 유예하거나 보류하자는 절충안을 대통령실에 제안했다. 이는 의료계와의 대화를 통해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려는 시도로 풀이될 수 있었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과 대통령실은 이러한 당 대표의 제안을 사실상 거부했다. 대통령실은 "정부 방침에 변화가 없다"거나 "의대 증원은 협상 사안이 아니다"라는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며, 기존의 증원 방침을 밀어붙일 뜻을 분명히 했다. 이는 주요 정책 현안에 대한 당정 간의 이견이 공개적으로 드러난 사례로, 한동훈 대표가 대통령의 국정 운영 방식과는 다른 해법을 모색하려 했음을 시사했다.
의대 증원 문제를 둘러싼 이러한 이견 노출은 단순히 정책적 견해 차이를 넘어, 정책 주도권을 둘러싼 당정 간의 힘겨루기 양상을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대통령실이 당 대표의 제안을 일축한 것은 정책 결정 과정에서 당의 역할에 대한 대통령실의 인식을 보여주는 동시에, 한동훈 대표가 당의 독자성을 확보하려는 시도와 대통령 중심의 국정 운영을 고수하려는 친윤계 간의 잠재적 긴장 관계를 암시하는 것이었다. 주요 정책 결정 과정에서의 이러한 조율 실패는 리더십 균열로 비춰질 수 있으며, 이는 향후 더 큰 정치적 갈등의 전조가 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2.2. 파국의 서곡: 비상계엄과 탄핵 정국 (2024년 12월 ~ 2025년 4월)
2024년 말부터 2025년 초까지 이어진 비상계엄 선포와 대통령 탄핵 정국은 한동훈과 친윤계 간의 갈등을 파국으로 몰고 간 결정적인 사건들이었다. 이 과정에서 한동훈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완전한 정치적 결별을 선택했고, 친윤계는 이에 강력히 반발하며 양측의 대립은 극단으로 치달았다.
2.2.1. 윤석열 대통령 비상계엄 선포 (2024년 12월 3일) 와 한동훈의 입장 변화
2024년 12월 3일, 윤석열 당시 대통령은 "종북 반국가 세력 척결" 등을 명분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이 과정에서 계엄군이 국회 진입을 시도하는 등 헌정 질서를 위협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이러한 비상 상황에 대해 한동훈 당시 국민의힘 대표는 즉각적으로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안 통과에 적극 협조하며 대통령의 조치에 반대하는 태도를 분명히 했다. 12월 4일, 한 대표는 윤 대통령과 면담을 가졌으나, 윤 대통령은 "더불어민주당이 탄핵을 남발하는 폭거를 하니 비상계엄을 선포한 것"이라며 자신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하려 했고, 한 대표는 면담 후 "대화에 진전이 없었다"고 평가하며 양측의 입장 차이만 확인했다.
초기에는 탄핵에 대해 신중한 태도를 보였던 한 대표는 , 12월 6일을 기점으로 탄핵 찬성으로 입장을 급선회했다. 그는 윤 대통령이 계엄 당시 주요 정치인들을 체포하라고 지시했다는 사실을 신뢰할 만한 근거를 통해 확인했다며, "대한민국과 국민을 지키기 위해서 윤석열 대통령의 조속한 직무집행정지가 필요하다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이러한 입장 변화에는 전 국방부장관의 구속영장에 대통령이 내란의 주도적 공범으로 적시된 점 등 새롭게 드러난 사실들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한 대표의 이러한 입장 변화에 대해 친윤계는 강력히 반발했다. 권영세, 나경원 의원 등 친윤계 및 당 중진 의원들은 "탄핵 반대"라는 기존 당론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한 대표의 결정에 제동을 걸었다. 이들은 "대통령이 오죽하면 그랬겠냐"거나 "대통령이 탈당하면 당의 존립 자체가 위협받는다"는 등의 논리를 폈다.
비상계엄 사태는 한동훈에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완전한 정치적 결별을 결심하게 만든 결정적 분기점이었다고 분석된다. 한 대표는 비상계엄 선포 직후부터 이를 "잘못된 것"으로 규정하며 대통령과 명확히 선을 그었고, 대통령의 추가적인 위법 사실이 확인되자 탄핵 찬성이라는 강경한 입장으로 돌아섰다. 이는 한동훈이 윤 대통령의 행위를 헌정질서 파괴로 규정하고, 더 이상 정치적 명운을 함께할 수 없다는 최종적인 판단을 내렸음을 의미한다. 이 과정에서 불거진 친윤계의 거센 반발은 한동훈과 친윤계 간의 관계를 돌이킬 수 없는 수준으로 악화시켰다.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정치 지도자의 선택은 개인의 정치적 미래뿐 아니라 소속 정당 및 국가 전체의 운명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주었으며, 한동훈의 입장 변화는 보수 진영 내 리더십 교체 및 권력 재편의 신호탄으로 작용했다.
2.2.2. 윤석열 대통령 탄핵 소추 및 파면 (2024년 12월 ~ 2025년 4월 4일)
비상계엄 사태 이후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절차는 급물살을 탔다. 2024년 12월 7일, 1차 탄핵소추안 표결이 시도되었으나, 국민의힘 의원 다수가 불참하면서 의결 정족수 미달로 부결되었다. 그러나 여론의 거센 비판과 한동훈 대표의 탄핵 찬성 입장 표명 등이 영향을 미치면서, 2024년 12월 14일 진행된 2차 탄핵소추안 표결에서는 찬성 204표로 가결되었다. 이 과정에서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상당수의 이탈표가 발생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후 헌법재판소의 심리가 진행되었고, 2025년 4월 4일,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8인 전원일치 의견으로 윤석열 대통령의 파면을 결정했다. 헌법재판소는 탄핵 사유로 비상계엄 선포의 위헌성, 계엄 포고령 1호의 위헌성, 계엄군을 동원한 국회 장악 시도 등을 명시하며, 대통령의 행위가 헌법 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반이라고 판단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파면은 친윤계의 정치적 기반을 근본적으로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대통령이라는 구심점을 잃은 친윤계는 정치적 정당성에 큰 타격을 입었으며, 당내 영향력 또한 급격히 축소될 수밖에 없었다. 반면, 한동훈 대표는 탄핵 국면에서 윤 전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우면서 상대적으로 '헌법 수호'라는 이미지를 구축할 기회를 얻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는 파면 이후 국민의힘 내부 권력 지형 재편 과정에서 한동훈계가 주도권을 잡는 데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이라는 초유의 사태는 해당 정당에 극심한 혼란과 분열을 야기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리더십이 등장하고 당이 근본적으로 재편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기도 한다는 정치학적 통찰을 뒷받침하는 사례가 되었다.
2.3. 파면 이후 권력투쟁: 새로운 갈등 양상 (2025년 4월 ~ 6월)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권력 공백을 메우고 차기 대선을 향한 주도권을 잡기 위한 움직임이 본격화되었다. 이 과정에서 한동훈 측과 구(舊) 친윤계 간의 갈등은 새로운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2.3.1. 채널A 사건 재조명과 윤석열-한동훈 과거 관계의 현재적 의미 (2025년 4월)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직후인 2025년 4월, 과거 '채널A 사건' 당시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이 한동훈 검사에 대한 감찰을 부당하게 막았다는 내용이 담긴 법원 판결문이 뉴스타파 보도를 통해 다시금 주목받았다. 이 보도는 한동훈과 윤석열의 과거 긴밀했던 '공생 관계'를 상기시키며, 현재의 첨예한 갈등 국면에서 복잡한 정치적 함의를 던졌다.
과거사는 현재의 정치 투쟁에서 종종 소환되어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곤 한다. 특히 관계가 틀어진 경우, 과거의 사건들은 더욱 복잡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될 여지를 남긴다. 채널A 사건 당시 윤석열의 한동훈 비호는 두 사람의 특수한 관계를 상징하는 사건이었으나, 윤석열 파면 이후 이 사건이 재조명된 것은 한동훈이 윤석열의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나 독자적인 정치인으로 인정받는 데 일종의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친윤 잔존 세력이나 한동훈의 정치적 경쟁자들은 이를 한동훈의 '원죄' 또는 '약점'으로 부각하며 공격의 빌미로 삼을 수 있으며, 한동훈으로서는 이에 대한 명확한 입장 정립과 해명이 요구되는 상황에 놓일 수 있었다. 이는 정치인의 과거 행적, 특히 전임 권력자와의 관계가 현재의 정치적 입지와 정체성 형성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보여준다.
2.3.2. 국민의힘 대선후보 교체 시도와 한동훈의 '친윤 떨거지' 발언 (2025년 5월)
2025년 5월,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이미 선출된 김문수 대선 후보를 한덕수 후보로 교체하려는 움직임이 발생했다. 이러한 시도는 당 지도부 차원에서 이루어졌으며, 여기에는 구 친윤계 일부 인사들의 입김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이 후보 교체 시도는 당원 투표 결과 반대가 우세하여 최종적으로 부결되었다.
이러한 당내 혼란 상황에 대해 한동훈 전 대표는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냈다. 그는 후보 교체 시도 자체를 "북한도 이렇게는 안 한다"며 비판했고 , 이후 김문수 후보 지원 유세 현장에서는 더욱 격한 표현을 사용했다. 한 전 대표는 "친윤 떨거지들이 한덕수로 바꿔치게 하려고 일부러 (김문수 후보의) 이름 안 새겨서 (선거운동복을) 나눠준 거 아닙니까. 작작하라고 하십시오"라며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냈다. 이 발언은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와의 완전한 관계 단절과 당내 친윤 세력의 정리가 차기 대선 승리의 전제 조건임을 공개적으로 천명한 것으로 해석되었다.
한동훈의 이러한 강경 발언에 대해 친윤계 및 일부 당내 인사들은 즉각 반발했다. 이들은 한 전 대표의 발언을 '당권에 대한 욕심', '도를 넘은 내부 총질', '명백한 해당 행위' 등으로 규정하며 격렬하게 비판했다.
'친윤 떨거지' 발언은 한동훈의 '탈윤(脫尹) 선언'이자, 당내 주도권 장악을 위한 일종의 승부수로 평가할 수 있다. 대선후보 교체 시도는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에도 여전히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구 친윤계의 움직임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었고, 한동훈은 이를 '구태 정치'로 규정하며 정면충돌을 선택한 것이다. 이는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관계를 완전히 청산하고 당내 구태 세력과의 차별성을 부각함으로써, 차기 대선 및 당권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려는 전략적 포석으로 풀이된다. 이 발언은 국민의힘 내부의 계파 갈등을 극단으로 치닫게 만들었으며, 한동훈의 리더십에 대한 중요한 시험대가 되기도 했다. 정치적 위기 이후의 권력 재편 과정에서는 종종 과거 세력과의 단절을 선언하는 급진적 발언이나 행동이 나타나며, 이는 새로운 리더십 구축의 일환이자 지지층 결집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된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III. 갈등의 핵심 인물 및 세력 구도
한동훈과 친윤계 간의 갈등은 특정 인물들의 리더십과 정치적 행보, 그리고 이들을 중심으로 한 세력 간의 역학 관계를 통해 전개되었다. 각 세력의 주요 인물과 그 역할을 파악하는 것은 갈등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
3.1. 한동훈 측 (친한계) 주요 인물과 그 역할
한동훈: 전 법무부장관, 국민의힘 전 비상대책위원장 및 당대표. 갈등의 핵심 축이다. 윤석열 정부의 '황태자'로 불리던 그는 비상계엄과 탄핵 정국을 거치며 윤 전 대통령과 대립하는 비판자로 돌아섰고, 파면 이후에는 당내 개혁을 주도하며 차기 대권 주자로서의 입지를 다지려는 행보를 보였다.
김경율: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 회계사 출신으로,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 의혹과 관련하여 '마리 앙투아네트' 발언을 통해 윤석열 대통령 측과 한동훈 당시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도화선을 제공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박정훈: 초선 의원. 언론인 출신으로 한동훈에 의해 영입된 인사다. 친윤계의 한동훈 공격에 대해 "숙주 찾기"와 같은 강한 표현을 사용하며 적극적으로 방어하고 반격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배현진: 재선 의원. 아나운서 출신으로, 초기에는 친윤계로 분류되었으나 이후 친한계로 전향하여 한동훈을 적극적으로 엄호하고 지지하는 모습을 보였다.
신지호: 전 국회의원. 과거 친윤계로 분류되었으나 이후 비윤·친한계로 정치적 입장을 변경했다. 한동훈 캠프에서 주요 직책을 맡는 등 친한계의 핵심 스피커 및 전략가 역할을 담당했다.
조경태: 다선(6선) 의원. 나경원 후보를 도왔으나 한동훈 당대표 당선 이후 친한계에 합류하여 한동훈을 지지하고 그의 대선 캠프에도 참여했다. 풍부한 정치 경험을 바탕으로 원내에서 한동훈의 입장을 대변하고 조언하는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보인다.
기타 원내/원외 친한계 인사들: 이 외에도 김종혁 전 최고위원, 박정하 의원(한동훈 당대표 비서실장), 최재형 전 의원, 양향자 전 의원, 김형동 의원(한동훈 비대위원장 비서실장), 정성국 의원(한동훈 영입인재), 한지아 의원(한동훈 비대위원/수석대변인) 등 다수의 인물들이 한동훈의 정치적 행보를 지지하며 세력 확장에 기여했다. 이들은 한동훈의 리더십을 중심으로 결집하여 당내에서 새로운 세력으로 부상했다.
3.2. 친윤계 주요 인물과 그 역할 (파면 이전과 이후)
윤석열 전 대통령: 갈등의 또 다른 중심축이다. 재임 중에는 대통령으로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파면 이후에는 비록 정치적 위상이 크게 약화되었으나 여전히 구 친윤계의 구심점 역할을 하거나, 그의 정치적 유산을 둘러싼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이철규: 친윤계의 핵심으로 꼽히는 3선 의원이다. 윤석열 대선 캠프와 당선인 시절 주요 직책을 맡았으며, 당 사무총장, 인재영입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친윤계 모임 '국민공감'(구 민들레)의 총괄간사를 지내는 등 윤 전 대통령의 의중을 당내에 전달하고 관철하는 핵심 역할을 수행했다. 2025년 5월 '당권 제안설'의 당사자로 거론되기도 했다.
권성동: 검사 출신의 다선 의원으로, 원내대표를 역임하며 친윤계의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한동훈의 탄핵 찬성 입장에 강하게 반발하며 당내 친윤 세력을 규합하려 했으나 , 2025년 6월 대선 패배 및 당내 후보 교체 시도 혼선 등의 책임을 지고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했다.
장제원: 친윤계의 핵심 인물 중 한 명으로, '민들레' 모임 초기부터 참여하며 친윤 세력화에 깊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진석: 국회부의장, 당 비상대책위원장 등을 역임한 중진 의원으로, 친윤계의 주요 인사로 분류된다.
기타 친윤계: 김정재, 배현진(초기), 박수영, 유상범 의원 등이 친윤계로 분류되었으며 , 이들은 윤석열 정부의 성공과 대통령의 안정적인 국정 운영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활동했다. 그러나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이들의 정치적 영향력과 결집력에는 상당한 변화가 관찰되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파면은 친윤계의 정치적 동력을 상당 부분 상실케 했다. 권성동 원내대표 등 주요 친윤계 지도부가 2025년 대선 패배 및 당내 혼란의 책임을 지고 사퇴하면서 세력 약화는 더욱 가시화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5년 5월 대선후보 교체 시도나 한동훈의 '친윤 떨거지' 발언에 대한 조직적인 반발 등은 여전히 구 친윤 세력이 당내에서 일정 부분 영향력을 행사하려 하거나, 한동훈의 독주를 견제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홍준표 전 대구시장이 파면 이후에도 윤 전 대통령을 감싸는 일부 친윤계를 향해 "정당 해산 청구될 것"이라며 맹비난한 것은 , 역설적으로 구 친윤계의 입지가 과거에 비해 크게 위축되었음을 방증하는 대목이다. 권력 핵심의 부재는 기존 지배 세력의 와해를 촉진하지만, 잔존 세력은 새로운 권력 구도 하에서 생존을 모색하거나 반대 세력으로 결집할 수 있다는 정치적 현상을 잘 보여준다.
[표 1] 한동훈계 vs 친윤계 핵심 인물 및 갈등 관련 주요 발언/행보 (2025년 6월까지)

IV. 갈등의 심층 원인 분석
한동훈과 친윤계 간의 갈등은 단일한 원인보다는 복합적인 요인들이 얽혀 발생하고 심화된 것으로 분석된다. 그 기저에는 차기 권력을 향한 경쟁, 정치적 비전 및 국정 운영 방식의 차이, 그리고 개인적 신뢰 관계의 변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4.1. 당내 권력 투쟁 및 차기 대선 구도 경쟁
모든 정치 갈등의 이면에는 권력 투쟁이라는 본질적 속성이 존재하며, 한동훈과 친윤계의 갈등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한동훈은 법무부 장관 시절부터 이미 잠재적인 차기 대권주자로 거론되었으며 ,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및 당대표를 거치면서 당내 기반을 확대하고 독자적인 정치 세력화를 시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움직임은 필연적으로 기존 당내 주류였던 친윤계의 견제와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윤석열 전 대통령의 파면은 이러한 당내 권력 투쟁을 더욱 노골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권력의 공백 상태에서 한동훈은 '친윤 구태 청산'을 기치로 내걸고 당내 헤게모니를 장악하여 차기 대선 가도를 다지려는 의도를 분명히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2025년 5월 불거진 '당권 제안설'이나 '대선후보 교체 시도' 등은 이러한 차기 대선 및 당권 경쟁의 맥락에서 발생한 사건들로 해석될 수 있다. 이에 대해 친윤계는 한동훈의 이러한 시도를 '당권에 대한 욕심'으로 폄하하며 강력히 저항했고 , 더불어민주당이나 개혁신당 등 외부에서는 이를 "당권 운동" 또는 "대선 패배를 상정하고 당권을 가지고 벌써 갈등하는 것"으로 평가하며 국민의힘 내부의 권력 다툼을 비판적으로 바라보았다. 이처럼 한동훈과 친윤계의 갈등은 표면적으로는 정책이나 노선 차이를 내세웠지만, 그 본질은 차기 권력, 특히 대권과 당권을 향한 치열한 경쟁이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4.2. 정치적 비전 및 국정 운영 방식의 차이
권력 투쟁 외에도, 한동훈과 친윤계(넓게는 윤석열 전 대통령) 사이에는 정치적 비전과 국정 운영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시각차가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의대 정원 증원 문제에 대한 해법 차이 나 비상계엄 사태에 대한 대처 방식에서의 극명한 입장 차이 등은 이러한 인식의 간극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한동훈은 '국민이 먼저입니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북콘서트를 개최하거나 , '실용이 이념을 이기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히는 등 , 기존 보수 정치의 문법과는 다른 새로운 노선을 추구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이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국정 운영 방식이나 친윤계가 추구했던 정치적 지향점과 차별화하려는 의도로 해석될 수 있으며, 이러한 차이가 누적되면서 양측의 갈등을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4.3. 개인적 신뢰 관계의 변화와 정치적 독립 시도
한동훈과 윤석열의 관계는 검찰 시절부터 이어져 온 깊은 신뢰를 바탕으로 했지만, 한동훈이 정치 일선에 나서면서 이 관계는 변화의 국면을 맞이했다. 초기 '윤석열 아바타'라는 이미지를 벗고 독자적인 정치인으로 성장하려는 한동훈의 노력은, 그 자체로 기존의 권력 구도에 익숙했던 친윤계에게는 일종의 긴장감을 유발하는 요인이 되었다.
특히 김건희 여사 관련 리스크에 대한 한동훈의 미묘한 입장 변화나, 비상계엄 및 탄핵이라는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보인 독자적인 판단과 행동은 윤석열 전 대통령 및 친윤계와의 개인적 신뢰 관계에 균열을 가져온 중요한 변곡점이었다. 한동훈의 '정치적 홀로서기' 과정은 친윤계의 시각에서는 '배신' 또는 기존 질서에 대한 '도전'으로 인식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윤석열에 의해 발탁되어 정치적으로 성장한 한동훈이 주요 국면에서 윤석열의 의중과 다른 목소리를 내거나 (예: 김건희 특검법 관련 입장, 의대 증원 유예 제안) 심지어 비판적 입장을 취하면서 (예: 비상계엄 반대, 탄핵 찬성) 독자 노선을 걷기 시작한 것은, 과거 '상하 관계' 또는 '주군-참모' 관계로 인식했던 친윤계에게는 용납하기 어려운 행동으로 비쳤을 수 있다. 정치적 후견 관계는 후견인의 영향력이 약화되거나 피후견인이 독자적 성장을 모색할 때 균열이 생기기 쉬우며, 이 과정에서 종종 감정적인 갈등이 수반된다는 점을 이 사례는 잘 보여준다.
V. 결론: 2025년 6월 현재, 갈등의 현주소와 향후 전망
5.1. 2025년 6월까지의 갈등 상황 종합 정리
2025년 6월 현재, 한동훈 전 대표와 구(舊) 친윤계 간의 갈등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에도 지속되며 국민의힘 내부의 불안정성을 증폭시키는 핵심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으로 한동훈은 당내 가장 유력한 차기 주자로 부상했으나, 여전히 당내에 잔존하는 구 친윤 세력의 견제와 반발은 끊이지 않았다.
특히 2025년 5월, 국민의힘 대선후보 교체 시도를 둘러싼 논란 과정에서 터져 나온 한동훈의 "친윤 떨거지" 발언은 양측의 갈등을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격화시켰으며, 감정의 골 또한 깊어질 대로 깊어진 상태다. 이에 대한 친윤계의 '당권 욕심'이라는 반격과 비판 역시 갈등을 더욱 증폭시켰다. 2025년 6월 초, 권성동 원내대표 등 친윤계 지도부 일부가 대선 패배 및 당내 혼란의 책임을 지고 사퇴하면서 , 국민의힘 내부의 권력 구도 재편이 가속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으나, 이는 갈등의 종식이 아닌 새로운 국면으로의 전환을 의미할 가능성이 높다.
5.2. 국민의힘 내부 권력 지형 변화 분석
윤석열 전 대통령의 파면과 그를 따르던 핵심 인사들의 연이은 사퇴는 친윤계의 정치적 영향력을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약화시켰다. 그러나 이들이 완전히 소멸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여전히 당내 일정 부분 지지 기반을 유지하고 있으며, 한동훈 전 대표의 독주를 견제하거나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는 형태로 그 존재감을 드러낼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한동훈계는 이러한 상황을 기회 삼아 당내 주도권을 더욱 강화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당의 완전한 장악과 통합으로 나아가는 길은 순탄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친윤 청산'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내부 반발과, 당내에 존재하는 다양한 중도 및 비주류 세력과의 관계 설정은 한동훈 리더십의 중요한 과제로 남을 것이다.
5.3. 향후 보수 진영 재편 및 정치 지형에 미칠 파장 전망
한동훈과 구 친윤계 간의 갈등은 단순히 국민의힘 내부의 권력 다툼을 넘어, 한국 보수 정치의 정체성 및 미래 방향을 둘러싼 노선 투쟁의 성격을 띠고 있다. 한동훈은 '친윤 구태 청산'과 '혁신'을 기치로 내걸며 윤석열 시대와의 단절을 통해 새로운 보수상을 정립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는 중도층으로의 외연 확장과 실용적인 보수 노선을 지향하는 움직임으로 이어질 수 있다.
반면, 구 친윤계나 전통적 보수 지지층은 기존의 가치와 노선을 유지하려 할 가능성이 있으며, 이러한 입장 차이는 향후 보수 진영 전체의 재편 과정에서 지속적인 갈등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최악의 경우, 국민의힘의 분열이나 새로운 보수 정당의 출현 가능성까지도 배제할 수 없다.
차기 대선을 앞두고 보수 진영의 후보 단일화 및 세력 통합 과정에서 이번 갈등의 향방은 결정적인 변수가 될 것이다. 한동훈이 당내 반발을 성공적으로 극복하고 강력한 리더십을 확립하여 보수 진영을 재결집시킬 수 있을지, 아니면 갈등이 장기화되고 심화되어 보수 전체의 약화를 초래할지가 향후 한국 정치 지형을 결정짓는 중요한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 주요 정치 세력 내부의 갈등은 종종 해당 세력의 이념적 스펙트럼과 정치적 지향점을 재정의하는 계기가 되며, 이는 전체 정치 지형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그 귀추가 주목된다.